晩悟홍진(洪震) 선생
1877. 8. 27~1946. 9. 9
․1919. 서울에서 한성정부를 조직하고 상해로 망명
․1921.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
․1922.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
․1926.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1930. 길림성에서 한국독립당 창당
․1942.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망령되게 공상을 꾀하여 오로지 타력(他力)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는 5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문화가 발달하여 인심이 고상하고, 2천여만의 단일민족으로서 이루어졌다. 10여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왔음은 독립 자치의 능력이 있다고 하는 확신 때문이었다. 금일에 이르러 근본적 해결을 하지 않고 오직 지엽적 미봉에 그친다면 평화 실현의 날은 무(無)할 뿐만 아니라 침략자의 편리를 조장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 1921년 선생이 태평양회의의 각국 대표에게 보낸 독립요구서 중에서 -
선생은 개황 직후인 1877년 8월 27일 서울 차동(車洞: 현재의 서소문)에서 풍산 홍씨(豊山洪氏) 재식(在植)과 청주 한씨(淸州韓氏) 사이 3형제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처음 이름은 면희(冕熹), 호는 만오(晩悟)이다.
명문의 가난한 선비 집에서 출생한 선생은 불행하게도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게 되었으나 어머님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았다. 특히, 선생은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을 뿐 아니라 남달리 시국의 혼란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일찍이 눈을 뜨고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식민검사 사임, 한성정부 수립 중추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