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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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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池靑天) 장군
1888. 2. 15~1957. 1. 15
지청천(池靑天)장군의 따님 지복영(池復榮) 여사는 지청천 장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준다.
장군이 1919년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교관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도열한 학생들을 일일이 점검하던 장군은 한 학생이 군복의 단추를 잠그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장군은 곧그 이유를 물었다. 당황한 학생은 “단추를 잊어버렸습니다”고 대답했다. 군복을 살펴본 장군은 단추가 떨어져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장군은 “잊은 것이 아니고 잃어버렸군”하며 그 학생을 호되게 질책했다. “제군은 잊어버렸다와 잃어버렸다의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가. 모름지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군인은 생각이 바로 되어야 하고 바른 생각은 바른 언어에서 나온다. 조국의 말도 제대로 모르는 군인이 어떻게 조국을 찾겠는가” 당장 학교를 자퇴하라고 명령하는 장군 앞에서 그 학생은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달라고 여러차례 간청한 끝에 겨우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지청천 장군의 인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화랑정신 구현한 문무겸전의 참군인
장군은 독립된 조국의 품에서 눈을 감기까지 평생을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생활한 참 군인이었다. 또한 광복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정신까지도 이미 염두에 둔 문무겸전(文武兼全)의 화랑도(花郞徒)였다.
장군은 1888년 2월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대형(大亨)․은규(銀奎)․석교(錫奎), 호는 백산(白山)이며 5살에 아버지를 여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랐다.
8세때에 어린 지청천이 일본인에게 30전자리 동전을 받자 자기 힘으로 벌지 않고 얻은 돈은 떳떳지 못하며 더욱이 나라를 침노하는 천한 일본인의 돈은 받는 것이 아니라고 꾸짖을 만큼 올곧은 성품의 어머니 밑에서 장군은 나라의 동양(棟樑)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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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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