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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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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강렬(片康烈) 의사
1892. 2. 28~1929. 1. 16.
양양한 압록강수는 밤낮으로
흘러가는 곳 어데이뇨
유유한 나의 심사(心思)
너를 따라 거지없다.
흘립천장(屹立千丈) 놉히서기
깁흔 담장안 너 그리워
탄식하는 너의 넷 주인(主人)
나를 네 보느냐
창공에 밝아있는 저 명월(明月)
아- 누구를 위하야서
교교히 빗치였는 철창(鐵窓)에
깁흔 한(恨)은 망국혼(亡國魂)이 늑기워라
언제나 언제나 붉은 담 붉은 옷
버서나
사랑하는 너를 질길소냐
애사(愛史) 편강렬(片康烈) 의사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그리워하며 신의주 옥중에서 지은 시이다. 약관 16세에 이강년(李康秊) 의병진의 선봉장으로 구국의 대열에 몸을 바친 이래 1929년 1월 16일 불과 37세의 나이에 옥고의 여독으로 타계하기까지 20여년간을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한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불살랐던 의사의 일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준다.
약관의 나이에 의병활동, 서울 진공작전 참가
의사의 선대는 경북 김천이 본거지로 할아버지대에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했다. 의사는 1892년 2월 28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片相薰)의 4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토왜복수(討倭復讎)를 외치며 의병이 일어났다. 1907년 의사는 연고지인 경상도 지방에서 일어난 이강년 의병진의 소집장 겸 선봉장으로 참전하여 경상․충청도 일대에서 큰 공적을 세웠다.
1908년에 전국의 의병이 경기도 양주에 집결하여 13도 창의대진소(13道 倡義大陣所)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작전을 결행하게 되자 의사는 중군장 허위(許蔿)의 휘하에서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출하여 싸웠으나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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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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