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가 홍보자료
일우(一宇) 김한종(金漢鍾) 선생
--------------------------
(1883. 1. 14~1921. 7. 8)
1. 선정배경
일제 침략에 대항 대한광복회 충청지부장으로
활동하신 선생의 순국 69주기를 맞아 선정
2. 주요공적
○ 1906 홍주의진에 종군하여 항일활동
○ 1917~1918 대한광복회 충청지부장으로 친일
부호 처단 등 의열투쟁 전개
○ 1921 사형 순국
7월의 독립운동가 김한종
일우(一宇) 김한종(金漢鍾) 선생
(1883. 1. 14 ~1921. 7. 8)
우리 4천년 종사는 회진(灰塵)되고 우리 2천만 민족은 노예가 되었다.
섬오랑캐(島夷:일제)의 악정폭행(惡政暴行)은 일가월증(日加月增)하니
이것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끓어올라 조국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念)
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이 본회가 성립된 소이(所以)이니, 각 동포는
그 지닌 바 능력을 다해 이것을 돕고, 앞으로 본회의 의기(義旗)가
동쪽에 오를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각 자산가는 예축(豫蓄)하여
본회의 요구에 응하여 출금하기 바란다. 만일 본회의 기밀을 누설
하거나 그 요구에 불응할 때는 자체 정규(定規)가 있어 이에 따라
징계할 것이다.
- 선생이 주도한 대한광복회의 포고문 -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 독립운동은 한말 국권회복운동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여러 면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우선
한말 국권회복운동의 양대 흐름이었던 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이
합류해 간 것이다. 두 운동 모두 국권회복을 지향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행동에 있어서 서로간의 의견차와 반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개화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계몽운동자들은 의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