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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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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선생
(1869~1940. 3. 13)
1. 선정배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81주년을 맞아 임정수반인 주석을
역임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선정
2. 주요 공적
○ 1906 만주 용정에 서선의숙 설립
○ 1911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설립
○ 1919-1929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3차례 역임
○ 1930 한국독립당 창당
○ 1927-1940 임시정부 주석 4차례 역임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선생
(1869~1940. 3. 13)
여러 학생들이여 우리의 용기가 좌절하였는가. 아니다. 우리의 정열이
식었는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유일한 요구인 독립에 대한 결심은
더욱 견고할 뿐입니다. 오늘에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한번 더 분명히
발표하기 위하여 다시 두 손을 높이 듭시다. 적의 간담이 서늘하도록
천지가 울리는 만세를 합창합시다. 세계의 의혹을 풀기 위하여 삼천리
강산에 무수한 태극기를 높이 달아야 하겠습니다.
- 임정의 내무총장으로 선생이 남녀학생에게 발포한 포고문 중에서
(1919. 10. 15) -
이동녕 선생하면 임시정부를 떠올리게 되고, 또 선생 없는 임정을 생각
하기 어려울 만큼 선생은 임정의 중심 인물이자 영도자였다. 그러나
선생의 민족운동이 단지 임정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20대에
민족운동에 투신한 이후 선생은 평생을 오직 조국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계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한말 독립협회의 근대화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시작된 선생의 민족운동은
{제국신문}을 통한 언론 계몽운동, 상동청년학원과 서전서숙을 통한
교육 계몽운동, 신민회를 통한 국권회복운동으로 표출되었다. 경술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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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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