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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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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川 신팔균(申八均) 장군
1882. 5. 19(음)~1924. 7. 2
․1909.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 조직
․1919.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독립군 간부 양성
․1922. 대한통의부 사령관 겸 군사위원장
․1963. 건국훈장 독립당 추서
국권회복(國權恢復)과 조국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그중 자신뿐만 아니라 처자(妻子)가지 조국광복의 제단에 바치신 선생은 일제하에서 김좌진(金佐鎭)․홍범도(洪範圖)․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만주(滿洲)를 무대로 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독립투쟁(抗日獨立鬪爭)을 전개하였던 대표적인 무장투쟁가다. 지청천(池靑天)․김경천(金擎天) 등과 함께 독립군 인재(人才)의 삼천(三天)으로 불리던 지휘관이다.
무관 집안에서 출생, 청렴강직한 성품을 지니다
1882년 5월 19일(음) 서울 정동(현, 영국 대사관 자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신석희(申奭熙)는 병마절도사, 포도대장 등을 거쳐 한성부판윤, 내부협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부 신헌(申櫶)은 삼도수군통제사, 병조판서 등을 고조부 신홍주(申鴻周)는 순조(純祖)때 훈련대장을 지냈다.
특히 조부는 전권대관(全權大官)이 되어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측 전권변리대신(全權辨理大臣) 흑전청륭(黑田淸隆)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고 1882년에는 미국의 R. W 휴페펠트와 조미수호조약(朝美修好條約)을 체결하여 조선의 최초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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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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