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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민주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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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5․18민주유공자
왕태경(王泰卿)
(1953. 9. 13 ~ 1980. 5. 22)
1. 선정배경
○ 탄신 52주년으로 민주유공자의 뜻을 되새기고자 선정
2. 주요 내용
○ 유공자의 집안은 전통적으로 유교를 숭상하는 집안으로 1980년 당시
농사도 많고 부동산도 좀 있어서 구례에서 유지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때 당시 부친은 구례에서 구례여객 전무 겸 『광원운수』이사를 지내
어느 정도 유복한 편이었다. 왕태경씨는 처와 두 살짜리 아들 은수와 함께 광주시 동운동에 살면서 부친이 마련해 준 『광남운수』 소속 시외버스
2대로 운수업을 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7일까지는 차가 통행이 되었는데 18일부터는 교통이 두절되어 사업을 순조롭게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왕태경씨는 버스 2대를 갖고 있었는데 한 대는 폐차를 시키고, 5월 13일에 새 차를 구입하여 등록을 하고 다른 한 대는 그대로 운행하였다.
5월 18일 새로 구입한 차는 강진-완도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기존에
있던 헌 차는 강진에서 광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산 차는 광주에서 데모가 일어나도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나 광주에 있던 헌
차는 19일에서 21일까지 3일 동안 시위대에 넘어가 차가 못쓰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차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19일 시내에는 쓸만한 차가 없어 차를 구하려 시위대들이 시외로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차주들은 시외에 있던 차들을 완도 등에
깊숙한 곳으로 숨기기 위해 시외로 빠져 나가기도 했다.
5월 22일 왕태경씨도 다른 차주 4명과 함께 검정색 자가용을 타고 시외에
있던 차를 숨기려 광주를 빠져 나갔다. 그런데 21일까지는 시내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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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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