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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은 자의 슬픔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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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고
미쳤군.
이 소설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내가 내뱉은 말이다. 이 글에서는 등장인물 모두 극단적으로 무엇 한가지에 빠져 광기를 내뿜는다. 사상에, 사랑에, 죽음에, 또는 광기, 그 자체에 빠져 헤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무 살의 '나'다. '내'가 푸른 스물이라고 표현하는 이 나이는 무언가에 심취해야만 하는 나이고, 또한 무언가에 심취할 수 있는 유일한 나이이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존 레논', '조지 해리슨'등의 작품을 들으며 컸다. 1960년 당시로선 흔하지 않던 '깨어있는 여자'를 어머니로 둔 덕택이다. 반면 아버지는 출가사문, 즉 중이다. 이 사실은 내가 국민학교 육 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 사진을 보아 알게되었다. 그러나 내 생전 아버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생사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일까. 어머니는 늘 외롭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던 어머니는 내가 열 아홉이던 해, 가수 존 레논이 죽기 꼭 하루 전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으며 자살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열 아홉의 나이에 혼자가 되었고 '나'는 당시 외롭고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꽉 차있었다. 남자 나이 열 아홉.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나이. '나'는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한다. 번화가에서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어느 까페 한 구석에서 친구와 영화도보고 도서실에서 밤새워 책도 읽는다.
'나'는 도시를 싫어한다. 도시에서 '나'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배웠고, 자유보다는 분노, 사랑보다는 증오를 먼저 배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증오하는 도시를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아둥바둥 산다. 승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럽지만, 패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곳, 도시. 이러한 도시에 살면서 '나'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무미건조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들어 데모대의 선봉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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