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소설사상
1.
김동인(金東仁:1900~1951)은 평양시 진석동에서 김대연(金大淵)의 차남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에 동경학원(東京學院) 중학부에 들어갔고, 다시 명치학원(明治學院)에서 수학했다. 김동인은 그의 아버지가 작고한 다음 결혼하고 나서 동경에 천단화학원(川端畵學院)에 들어갔으나 중도에 학교를 퇴학하였다. 그리고 1919년 2월에 문학 동인지 『창조(創造)』를 전영택(田榮澤), 주요한(朱耀翰) 등과 더불어 동경에서 창간하고 여기에 단편 「약한자의 슬픔」을 발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문학적 경향은 자연주의, 인도주의, 민족주의, 탐미주의, 낭만주의 등이 작품에 따라 다채롭게 나타나 있다. 그의 문학적 업적 또한 다양하여, 단편, 중편, 장편에 두루 손을 대었으며, 현대소설과 역사 소설 및 야담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작품으로 썼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기록에도 밝혀져 있거니와 그는 매우 오만하고 당돌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이러한 그의 성격은 문학적 스타일에도 반영되어, 객관적 묘사라기보다는 호방하고도 직선적인 서술로 일관했다. 특히 그의 문장 혁신, 오늘날에 쓰는 과거시제의 사용과 대명사 그, 그녀 등을 몰아 그로 표기한 점 등은 우리 문학사상 시간성의 확립을 문학작품으로 보인 최초의 중대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증요 작품으로는 단편에 「배따라기」 「감자」 「송동이」 「광화사(狂畵師)」 「광염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곰네」 등이 있고, 중편에 「마음이 옅은 자여」 「여인」 「거인은 움직인다」 「김연실전(金姸實傳)」 등과, 장편 「젊은 그들」 「대수양」 「아기대」 「운현궁의 봄」 등이 있다.
2.
『창조』가 조직된 것은 1919년 초기였다. 이 무렵에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의 네 사람은 동경 유학생으로서 새로운 문학활동의 의욕에 넘쳐 동인을 조직하고, 2월에 순수 문학동인지 『창조』를 일본에서 창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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