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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고독한_에고이스트가_도달한_초로의_경지_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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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고독한 에고이스트가 도달한 초로의 경지 작품론
「성 중위님, 참모장님이 부르십니다.」
잘 닦아 번쩍이는 계급장을 단 상병이 삐걱거리는 판자바닥 위로 몇 걸음 걸어오면서 말했다. 콧날이 뾰죽하게 야윈 장교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사병은 자기의 말소리가 분명히 상대방에게 들릴 만큼 컸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장교의 눈간 끝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퀸셋의 열려진 녹색의 창문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텅빈 높게 개인 가을 하늘뿐이었다. 사병이 다시 성 중위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천천히 업무일지와 만년필을 집어들면서 일어서고 있었다. 전갈 온 상병은 자기의 말이 전달되었음을 알아채고 덧붙였다. 「약간 저기압인 거 같아요.」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어 보이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씩 웃어보였다.
서두가 이렇게 시작되는 서정인의 「후송」을 내가 읽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로서는 꽤나 진보적이면서도 문학에 대해서도 중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던 『사상계』지가 최초로 공모한 신인작가상의 당선작품으로서였다. 황석영의 「입석 부근」을 가작으로 밀어내고 당선된 이 작품은 이상하리만큼 그후로도 두고두고 나의 뇌리를 사로잡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린 전쟁 상이용사들의 아귀다툼과 창녀들의 신음소리가 주조를 이루던 50년대의 전후문학에 최초로 결별을 고한 이 작품은 소설에서 흔히 기대되는 플롯을 서두에서부터 배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중위라는 젊고 고독하고 선량하면서도 양식있는 주인공의 내면의 소야곡이 요란스러운 사건의 소용돌이가 없이도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문학소년이었던 나에게는 경이처럼 느껴졌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는 자각증세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군의관 사이의 다음과 같은 대화의 단절이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있다니
「그래서요」
군의관은 성 중위의 다음 말을 예측할 수 있다는 듯이 눈가에 미소를 약간 지어 보이며 재촉했다.
「귀에서 소리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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