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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개방과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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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개방과 기독교
오늘날 성의 개방을 말한다. 성을 말한다는 것이 이미 개방을 뜻한다. 과거에 성이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성을 즐기는 법을 말하고, 혼전 순결에 대해서도 많은 말이 오가고, 결혼 이후에도 개방적인 성 관계가 사회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동거를 많이 하고 결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이혼도 많이 한다.
천년 만년 세월이 흘러도 사람의 욕망의 기본 뼈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성욕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거기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도 늘 있어 온 것이리라. 그러나 욕망을 바라보는 눈은 바뀌었다. 그러면서 가치 판단의 문제도 간단치 않게 되었다. 묻어 두고 감추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성욕의 문제가 당당한 얘깃거리로 등장하는 세상이 되었다.
1. 근대성과 욕망의 해방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는 억압하는 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이루려는 운동이었다. 그것은 욕망의 해방으로 이어진다. 이미 르네상스에서 그 문제의 싹을 볼 수 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이 중요한 것은 그 미소의 아름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을 그렸다는 점이다.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 성녀도 아니며 천사도 아닌 보통 사람이 그림의 주제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유명한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은 일종의 음담패설이다. 그 작품성은 잘 모르겠고, 적어도 그 소설의 중요성은 일상의 얘기를 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얘기 또는 거룩한 얘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얘깃거리가 되기 시작했다는 점,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는 보통 사람을 그리고, 일상 생활을 얘깃거리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성과 속의 이분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욕망을 긍정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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