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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선교사의 선교 운동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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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선교사의 선교 운동 전략
조선 사회는 말기에 안으로는 개혁을 원하는 무리가 늘어가고 밖으로는 급변해 가는 정세를 살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조선 사회에서 미국과 개신교 선교사들에 대한 인상은 좋았다. 황준헌의 조선책략에서는 미국과 개신교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적인 내용이 들어 있고 이것은 양반 엘리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알렌 선교사는 서양 의술과 성실성으로 미국인에 대한 감정을 크게 호조 시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개신교 기독교에서는 직접 전도보다 의료 사업과 교육 분야에 더욱 힘을 쏟았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서양 의술을 보급하고 근대 교육을 실시하여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동안 프랑스에서 파견된 천주교는 포교 활동에 힘을 쏟았다. 미국의 개신교 쪽에서는 신중하고 호혜적인 접근 방식으로 신뢰를 쌓는데 주력을 두었으나 천주교는 조선 정부와 다투며 직접 군대를 파견하여 마찰을 빚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인상은 국민들에게까지 호의적이었고 천주교에 대하여는 반감을 갖게 되었다.
의료 사업과 교육 사업의 효과는 더디 나타나지만 대신 단단한 기반이 되어 1890년대 들어서면서 선교사들이 더욱 파견되어 나왔고 선교 사업도 지방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여기에도 의료와 교육 사업은 함께 들어갔다.
이 글은 선교 운동의 전략에 관하여만 쓴 글이다. 전반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낳은 보다 특수한 조건들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매우 흥미 있게 읽은 글이다.
조선 시대 때 우리 나라에서는 복자(福子)가 70명이 넘어서고 엄청난 수의 순교자가 나왔으나 기독교 순교자는 솔직히 말하여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만큼 이러한 부조화를 궁금히 여겨 왔었는데 여기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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