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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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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에 대해서
1. 혁명의 계기
영국 본토의 식민 정책에 대해서 식민지人은 차를 밀수입하고 영국 상선에 의해 수입되는 차에 대해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본국 정부는 1773년에 새로이 茶法(Tea Act)을 제정하여 동인도 회사에 차 수입의 독점권을 주는 동시에 면세혜택을 주었다. 식민지인의 불만이 커 필라델피아, 뉴욕 등에서 동인도 회사의 차의 하역을 거절하였다. 보스턴에서는 일부 급진분자들이 인디언(원주 아메리카인이 맞는 표현이다)으로 가장하여 영국선을 습격하여 동인도 회사의 차 15,000파운드를 바다에 던졌다.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이라 불린 이 사건에 분격한 본국 정부는 강경수단을 취하기로 하였다.
곧 1774년에 '강제 제법'이라 불리는 여러 법령을 연달아 만들어 보스턴 시민이 배상금을 내고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보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매사추세츠 식민지를 국왕의 직속으로 하고 매사추세츠의 재판에 본국의 감독을 보내고 때에 따라 본국 군대를 민가에 유숙시키기로 하였다. 또 퀘백법(Quebec Act)을 제정하여 캐나다에 퀘벡 지방에서 오하이오 강에 이르는 땅에 구교를 승인하고 배심제가 아닌 사법 제도와 대의제 의회가 없는 정치제도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통신위원회의 활동에 의해 1774년 9월 조지아를 제외한 전식민지의 대표가 Philadelphia에 모여 제 1회 대륙회의(The First Continental Congress)를 열어 본국과의 통상을 끊고 본국 상품을 배척하기로 결의하였다. 본국에서는 Pitt(1759-1806)가 타협안을 의회에 제출하였으나 부결되었다. 1775년 4월 보스턴 서쪽의 Concord에 있는 무기고를 파괴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군의 일부가 Lexington, Concord에서 식민지의 민병과 충돌하여 독립전쟁(독립혁명)의 불꽃이 일어났다. 이에 식민지 대표들이 5월에 필라델피아에서 제 2회 대륙회의를 열어 '무력에 호소하는 이유와 필요의 선언'을 결의하여 본국 정부에 그 회답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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