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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노동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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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노동의 새벽’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970년 11월13일 낮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절규는 노동자계급 최초의 자기선언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수출 드라이브의 뒷전에서 나사못보다 못한 대우에 시달리던 한 노동자의 분노는 스물셋 젊은 몸뚱어리를 장작 삼아 불타올랐다. 그것은 노동해방이라는 미륵세상을 갈구하는 지성의 소신공양이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84년 가을, 노동자계급은 또 한 사람 그들의 대변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 몸을 불사르는 방식은 아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박노해 노동의 새벽' 첫 연).
전태일의 분신과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의 출간은 그 형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용에서는 동일한 것이라 할 만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발, 계급해방에의 간절한 열망, 동료 노동자들을 향한 각성과 단결에의 외침이 그 두개의 형식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14년이라는 시간의 진행이 남한 노동자계급의 일과 삶에는 아무런 질적인 차이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노해(본명 박기평․39)씨가 공식 문단에 얼굴을 내민 것은 83년 황지우․김정환씨 등의 시동인 시와 경제' 제2집 <일하는 사람들의 미래>에 시다의 꿈' 하늘' 얼마짜리지' 등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긴 공장의 밤/시린 어깨 위로/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드르륵 득득/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으로/장미빛 꿈을 잘라/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끝도 없이 올린다(시다의 꿈'1․2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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