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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신국가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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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승만의 건국 이상
이승만은 외교 독립 노선을 추구했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정치 사상이나 건국 이념은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그의 청년 시절과 미국에서의 장년 시절, 그리고 귀국하여 대통령이 된 이후의 언행 행적을 살펴본다면 이승만의 정치사상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 기독교 국가의 건설
어려서 엄격한 유교의 전통에서 자랐지만 이승만은 신교육을 받으면서 기독교와 이에 바탕한 서양 문명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서향 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적 토대 위에 신 국가를 건설할 것을 염원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기독교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을 감화시켜 서양 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기독교적인 섭리 사상을 믿었으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도의국가를 건설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이 이승만의 건국 이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다.
2) 민주 공화제 정부 수립
이승만은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즉 ‘부강 문명’의 필수 조건인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이상적인 정치제도는 민주 공화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나라 백성들의 우선적으로 입헌군주제의 도입을 주장하였지만,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과 1912년의 중국의 신해 혁명을 보면서 점차 민주 공화제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1919년 4월 15일 미국에서 ‘한인총대표회’를 개최하고 <종지>를 채택하였다. 여기에 나온 2조를 보면 3.1운동 후 이승만을 포함한 재미 독립 운동가들은 앞으로 조국에 탄생될 한국인의 새 정부가 미국식의 대통령 중심제 민주 공화정부여야 하면 한국인의 교육 수준으로 보아 완전한 민주주의적 자치를 실현하기에 미흡하므로, 건국후 10년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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