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자연의 서정]
조선조 말기 여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정말 안 예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 눈에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우리 학생들 눈에도 그렇단다. 그런데 요즘 여학생을 포함한 여성들을 보면 정말 예쁘다. 안 예쁜 여자가 없을 정도다. 정말 그럴까
얼마 전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를 텔레비전으로 본 일이 있다. 그런 대로 다들 아름답다.
하기야 아름다우니까 각각 자기 나라 대표로 뽑혔겠지. 아프리카 흑인 여자까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름다움이 시대마다 전형이 있고 나라마다 특징이 있는 거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아름다운 여자는 있어 왔다. 클레오파트라가 그렇고 버들가지 같은 양귀비 허리가 그렇다.
낭만주의 이후 소위 현대성 감성의 미인상이 태어난다. 낭만주의가 감성을 중요시했듯이, 이 때부터 내게 와닿는 여인상이 최고의 미인이 된다. 루소는 '나는 남과 다르다고 느낀다. 나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르다는 걸 느낀다' 라는 이야기로 낭만주의의 독창성을 느낌에서 찾도록 유도했다. 소위 '필링(feeling)'이 있는 여자, '필링'을 주는 여자가 오늘의 미녀상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여인상은 어떤가. 보르헤스나 푸꼬가 좋아하는 말은 '다른 사람, 같은 사람'이다. 각 시대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눈은 달라져 왔다. 따라서 아름답고 인기있던 여인상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있는 선진 조국의 우리도 동굴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이 옷벗고 대고 부비고 낄낄대고 좋아하며 산다. 이 너무 후진스러운 작태를 조금 개선해 본다는 것이 물침대 정도. 달라졌다고 보기에는 근본적으로 너무 달라진 게 없어 조금 창피하기까지 한 너와 나의 후진성, 아니면 같음성. 그래서 오늘은 서양 중세의 미인의 모습을 살피고 그 다름성과 같음성을 살피는 재미를 맛보자.
프랑스나 기타 구라파 여러나라에 알려져 있던 시가 중에 「이집트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라는 시가가 있다. 마리아가 집을 떠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창녀생활을 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시가다. 부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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