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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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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교육 사상
공자는 이념상의 [유]라고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일면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모습은 단순한 교육자임은 사실이며, 공자는 스스로 제자들이 국가와 사회에 유용하게 될 전 인격을 갖춘 인물이 되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공자는 각종 경전에 기초한 제 분야의 지식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또한 공자는 스승으로서 자신의 임무는 고대의 문화 유산을 제자들에게 해설해 주는 것이라고 느꼈다. <논어>에 공자 자신이 자기는 조술자이지 창작자가 아니라(『논어: 술이』)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자의 한 국면일 뿐 또한 다른 국면이 있다. 즉 공자는 전통적인 제도나 사상을 전승케 하는 한편, 공자 자신의 도덕관으로 그 제도와 사상을 해설하였다는 것이 바로 상술한 다른 국면이다. 친상을 당한 아들은 3년상을 치러야 한다는 구관습에 대한 공자의 해석에서 그 뚜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공자는 자식이 나서 3년이 되어서야 부모의 품속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니 대개 3년상이란 온 세상의 공통적인 상례이다. (『논어: 양화』)라고 말하였다. 바꿔 말하면 자식은 적어도 삼년동안은 전적으로 부모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렸을 적의 감사 표시를 위하여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같은 기간동안 부모상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공자는 경전을 가르침에 있어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었다. 그리하여 공자는 <시경>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여 시경에 실린 3백여 편의 시를 한마디로 포괄하면 생각에 사가없다.(『논어:위정』) 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공자는 단순한 조술자,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공자는 조술을 하면서도 독창적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이부작]의 정신은 공자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경전들은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 대대로 전승되었음으로 수많은 주석과 해설서가 나오게 되었으며, 현존하는 13경의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원문에 주소를 달아서 확대된 것들이다.
<풍우란 저 ,정인재 역, 중국 철학사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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