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팬티 입은 여자 ’
겨울이 지난 어느 오후, 비스듬히 열린 창으로 봄빛이 가만히 흘러들면 그 곳에 작은 화분 하나를 갖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때면 난 여름과 가을을 채우게 될 화사한 날들에 대한 기대감보다 오히려 지나간 시절의 기억들에 아련히 젖어들곤 한다.
생각해보면 내겐 참으로 무미건조했던 학창시절이었다. 맘에 끌리는 서클에 들어 열성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80년대 초 학생운동이 처절했던 시절이었는데도 나하고는 무관했었다. 겨우 한다는 것이 쾌쾌하고 어두운 음악다방에 구겨져서 한창 극성을 떨던 락음악에 취해 있는 게 다였으니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사회의 구성원이었음에도 하등에 도움이 안되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한 후 뭘 하며 살까 하고 신문을 뒤적이던 중 눈에 띈 게 연극이었다. 끼가 있었던지 금방 마음이 끌렸고 연극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난 무작정 그곳에 뛰어들었다. 어느 극단에 들어갈까 고심하는데 얼핏 언젠가 인상깊게 보았던 연극의 주연배우가 대표로 있는 극단이 단원모집란에 보이길래 거기로 정하고 연극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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