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 『후계자들』
최초의 인간, 그 선과 악의 신화
류수안
그들은 서로 잇대어 깎아지른 절벽의 중반에 잠들어 있었다. 대지로부터 절벽 중반의 높이에 오르느라 인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이들은 이제 지쳐 있었다. 오랜 후, 잠들어 있던 무리 중의 일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그들은 눈떠 공중을 향하여 가파르게 뻗어 올라간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 절벽 끝의 숲을 바라보았다. 항성들이 뿜어내는 빛 너머 딴 세계를, 어둠의 둥근 몸뚱이가 발하고 있는 푸르른 색채를 보았다. 하나 둘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발한발 저 높은 딴 세계를 향하여 절벽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올라가던 몇몇 종족은 떨어져 사멸하여 갔다. 그럼에도 결코 절벽의 끝으로 올라가기를 멈추지 않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법을 터득해 갔다. 이렇게 하여 인류는 원시에서 인간에로의 위대한 성장의 한발을 내딛어 갔고 바위에 그 내역을 화석으로 남겼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문명 태동의 첫 순간을 이렇듯 바위 중반에 머물러 있다가 잠깨어 다시 절벽을 올라가는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역사보다는 신화의 냄새가 더욱 강한 이 장의 말미에 토인비는 말하였다. 모든 역사는 일리아드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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