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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곡가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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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재작곡가 윤이상
나비의 꿈은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천재작곡가 윤이상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윤이상의 삶에 대해 살펴보면
1917년 9월17일 경남 통영에서 윤기현의 아들로 태어남.
1935년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눈을 피해 17세때 가출, 일본으로 음악공부를 떠나면서 예술가로서의 파란만장한 길에 들어서게됨 일본 오사카 음악학원에서 작곡․음악이론․첼로 등을 공부함.
1954년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가곡․실내악곡 등 발표.
1955년 <현악사중주 1번>과 <피아노 삼중주>로 서울시 문화상 받음.
1956년 귀국 한 뒤 고향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한계를 느껴 39세의 나이에 파리국립음악원으로 다시 유학길에 올라 음악이론과 작곡법 배움
1957년 8월 서베를린의 음악대학에서 공부함.
1959년 9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무대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59년독일다름슈타트음악제에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에 한국의 궁중음악 색채를 표현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시작함.
네덜란드의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이, 다름슈타트에서는 <일곱 악기를 위 한 음악>이 초연됨.
1963년 북한 방문.
1967년 인생을 평생 옥죈 멍에로 작용한 동베를린사건에 연루,한국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서 울로 납치되어 1심에서 종신형 선고받음
1968년 2월 감옥에서 <나비의 미망인>을, 병원에서 <율>과 <영상>을 완성함.
1969년 2월 석방돼 독일로 돌아감. 서독 뉘른베르크에서 그의 이중 오페라 <꿈>과 <나비의 미 망인>이 초연됨.
1971년 독일 국적 취득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곡가의 외길을 걸음
1972년 오페라 <심청> 초연.
1977년 베를린 예술대학의 정교수가 됨(~87).
1981년 5월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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