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에서의 과학.
1. 독일의 정체 (polity) : 18세기 후반 프러시아 (수도: 베를린)
18세기 독일에서 과학이 발달한 곳은 아카데미로 대학은 처첨한 상황이었다. 1700 베를린 아카데미 창립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를 모방.
17세기 초반 30년 전쟁(1618-48) 이후 독일은 인구 감소와 경제적 파탄을 경험. 18세기 독일의 부르조아 계층은 영국과 프랑스에 비교하면 빈약한 편. (정치적, 경제적인 의미에서)
1806년 나폴레옹에게 패배 : 프랑스군이 프러시아를 점령 주들을 병합해서 주의 수를 줄임. 민족주의 의식이 깨어남.
1818년 : 반동적 분위기 - 각 주의 국왕(봉건 군주)들이 이상주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멀리하고 탄압. 그러나 대학의 개혁은 게속 .
1815 - 1848 : 민족주의 혁명의 발발. 1848 :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 --> 실패 :민족주의 세력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영국에서와 같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을 이루지 못했다.
: 독일 지식인 - 정치적인 좌절을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의 순수성을 추구.
당시 “독일”이라는 정치 단위는 없었다. 관념으로서의 독일과 언어만 존재 : 독일 관념주의 (idealism)의 발달, 지식인들의 역할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했다.
☞ 과학의 인기 상승 : 힘, 권위, 문화적 과시.
1871년 독일 통일 : 비스마르크 - 상당히 보수적, 민주주의세력 탄압, 복잡한 정치 상황. 비스마르크은 융커(Junker: 땅을 가지고 있던 쁘띠 부르조아)와 제휴.
1888 : 비스마르크 실각. 노동자 봉급 인상과 독일의 급속한 산업화로 융커 세력이 급속히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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