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해방 전후’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 그날이 오면' 첫연).
소설 <상록수>의 저자이기도 한 심훈(1901~36)의 시 그날이 오면'은 일제 통치의 전기간을 통틀어 조국 해방에의 의지를 가장 절절하게 노래한 시편에 속한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살이를 겪고 일시적일망정 상하이로 망명까지 했던 그의 이력은 이 시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담보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주제의 선명함을 미학적 고려에 앞세우는 데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절박함은 역으로 그날'의 요원함에 대한 뼈저린 회한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침내, 그날은, 왔다. 심훈이 보지 못한, 아니 윤동주와 이육사와 한용운이 끝끝내 살아서 보지 못한 그날은 늙은 히로히토의 침통한 항복선언과 함께 문득 현실이 되었다. 심훈과 윤동주와 이육사와 한용운은 그날을 만난 기쁨에 죽지 못하고, 죽어서야 그날을 맞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한으로 남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그날을 맞이한 이들에게 1945년 8월15일은 새로운 가능성과 의욕의 이름이었다. 4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이민족의 지배 아래 신음해온 겨레붙이들로서는 이제야말로 누구의 간섭과 훼방도 받음이 없이 제출물로 근대화라는 역사의 신작로를 활보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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