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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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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李 滉)
Ⅰ. 이황의 생애
이황(李滉, 1501-1570, 이하 퇴계라 칭함)의 동상비문에서 열암 박종홍(朴鍾鴻)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웅성 깊고 정밀한 것은 선생의 학문이요, 분명하고 간곡한 것은 선생의 가르침이다. 앎도 행함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공경의 자세 하나로 밑받침하는 데 교학의 근본을 두었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진실되어 제자들을 정성껏 이끌어 계발하니 문하에 명현들이 뒤를이어 나왔다.
고명한 이름이 일찍부터 널리 들리었으며, 70평생의 마지막까지 자기의 학설 속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치기에 용감하였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주신 값진 본보기이다. 벼슬살이를 즐기지 않았으나 국은에 보답하는 일념에서 심혈을 기울여 지은 글들을 임금께 올리니 나라를 근심하는 경륜이요 유학의 진수이었다. 품격 높은 선생의 글은 저절로 사람을 감복케 한다.
선생은 경상도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돌아가셨지만(1501-1570)멀리 일본의 선비들마저 선생을 신명같이 존중하여 명치시대에까지 정신적 길잡이로 받들었다. 선생은 동방의 빛이요 길이 우러러 본받을 스승이시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11월 25일 진시(辰時),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인데 어릴때 이름은 서홍(瑞鴻)이라고 하였으나 숙부 송제(松薺)는 이마가 넓다고하여 광상이라고 불렀다.
그의 관향은 진보(眞寶), 일명 진성(眞城)이다. 시조 석(碩)의 7세 손으로서 가계는 다음과 같다.
Sorry~~
이 부분은 한자가 너무 어렵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므로 못했습니다.
시조 - 종
5대조 - 자
고조
증조
조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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