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력을 앞세운 수탈구조의 구축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부터 한국을 식민지로 재편하기 시작하여 1910년대에 이를 일단 완성했다. 즉, 한국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상품시장 및 식량․원료공급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외형상 「근대화」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였다.
식민지 수탈구조의 구축작업 중에서 일제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 중의 하나가 화폐정리사업이었다. 일제는 한국의 화폐본위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들고 한국의 白銅貨 및 엽전을 무효화하여, 교환․회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의 농간으로 한국인, 특히 한국상인의 손에 축적되어 있었던 화폐자본이 하루아침에 소멸되어 갔다. 일제의 금융지배는 조선은행․식산은행․금융조합이라는 식민지 금융제도를 성립시킴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근대적 운송망의 구축 특히 철도의 부설은 경제적 침투, 재화의 수탈은 물론 군사적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1899년 경인선이, 1901년에 경부선, 1906년에는 경의선이 완공되었다. 철도 부설에 필요한 막대한 토지와 노동력을 일제는 한국농민으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혹은 강제부역형식으로 수탈하였다. 이렇게 부설된 철도는 기존의 유통망을 교란하면서, 일본인중심의 새로운 상업근거지를 만들었다.
1905~1920년에 일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으며 국민 대다수의 농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농업정책이었다. 이 농업정책은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이른바 土地調査事業이었으며, 두 번째는 농업을 식량․원료공급지에 적합한 구조로 개편하는 작업이었다.
일제는 토지조사를 통해 소유권을 확정하고, 다시 등기제도를 실시하여 이를 보호하였는데, 이는 일제자본의 자유로운 농촌침투와 그 지배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또한 이 토지조사사업에서는 지세의 선정과정에서 50%의 고율 소작료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줌으로써, 이후 이른바 식민지 지주제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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