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낭만주의-쇼팽
|
|
|
|
쇼팽 [1810.3.1~1849.10.17]
폴란드 작곡가 피아니스트. 바르샤바 출생
아버지는 바르샤바 육군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프랑스인 니콜라스 쇼팽,
어머니는 폴란드의 명문 귀족 출신인 유스티나 크지노프스카.
어려서부터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17년 정식으로 A.지브니에게 피아노를 사사하였는데, 18 년 공개연주회에서 기로베츠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22년부터는 바르샤바음악원 창설자인 J.엘스너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우고, 중학 재학 중에 러시아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 칭송을 들었다.
또 시골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며 폴란드의 민속음악에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6년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등을 작곡하고, 또 이 무렵 J.N.후멜과 사귀게 됨으로써 창작하는 데 있어서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30년 11월 쇼팽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있는데, 이 때 폴란드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 후 그는 후멜, 탈베르크, K.체르니 같은 피아니스트와 교류를 가졌고, 31년 9월 빈을 떠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혁명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혁명에 큰 기대를 걸었던 쇼팽의 실망은 컸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혁명 실패의 소식을 듣고 작곡한 것이 오늘날 《혁명 에튀드(작품 10의 12)》로 불리는 작품이라고 한다.
31년 9월 중순 파리로 나온 쇼팽은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C.칼크브레너에게 피아노를 사사할 예정 이었으나, 그의 개성이 상실될 것을 염려한 친구 F.리스트와 F.힐러의 만류로 이를 중지하고 말았다.
32년 그는 파리에서의 최초의 연주회를 개최하여 호평을 받고, 그 뒤 폴란드 귀족의 소개로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또 이 무렵부터 작품도 활발하게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