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박사에 관하여
이휘소(미국명 Benjamin Lee)는 193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기고 2학년(1952년)때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 화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재학중인 54년 미국으로 갔다. 도미후 물리학으로 전환한 이휘소는 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과를 졸업하고 58년 피츠버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60년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는 약관 28세에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65년 뉴욕 주립대학으로 옮긴 이 박사는 74년부터 사고를 당할때까지 시카고대학 이론물리부장을 맡아 왔는데, 당대 핵물리학의 최고 이론가로 인정받았다.
이 박사는 아직까지도 과학계에서 한국인중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교통사고사가 의문사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것은 그가 박정희의 핵개발 강행과 미국의 저지공작이 첨예화된 시점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이휘소 박사의 사후 68일 만인 1977년 8월 24일 이박사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추서이유는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에 진력 했다는 것이다. 연구생활 20년을 줄곧 미국에서 활동한 이박사가 우리나라 를 위해 진력 했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사고 개요 (미국 경찰청이 보관중인 당시 사고 기록임)
●사고발생 시간: 1977년 6월 16일 오후 1시 22분
●경찰 구조대(케워니시의 SHEFFIELD RESCUE) 도착시간: 1시 38분
●가해자
이름: 존로서(LEWIS. JR JOHN LOTHER, 35년 7월 27일생, 운전면허번호 261-50-1680)
주소: 아이오와주 데스모이니스(DES MOINES)시 501-7
직업: 아이오와주 포리스트 애비뉴 116에 주소를 둔 회사(TRANSOL CO.) 운전수
●가해차: 74년에 만들어진 대형트럭(CA213HP103431, 모델 FREIGHTL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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