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여류 예술가
1. 금원김씨(錦園金氏)
1817(순조 17)∼ 조선 말기의 여류시인. 호는 금원(錦園).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의 동인이다.
원주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병을 자주 앓아 몸이 허약하므로 그의 부모가 글을 배우도록 했는데, 글을 뛰어나게 잘해서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고금의 문장을 섭렵하여 시문에 능했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하면서 1830년(순조 30)3월 14세 때 남자로 변장하고 단신 금강산을 유람하여 견문을 넓혀 시문을 짓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돌아와서 시랑이며 규당(奎堂)학사인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1843년(헌종 9)27세로 문명을 떨쳐서 세상에서 ‘규수 사마자장(司馬子長)’이라고 칭호하였다. 1845년에는 김덕희와 함께 서도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1847년에 돌아와 서울 용산에 있는 김덕희의 별장인 삼호정에 살면서 같은 처지의 벗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규합하여 시문을 지으면서 시단을 형성하였다. 이때의 동인들이 김운초(金雲楚)·경산(瓊山)·박죽서(朴竹西)·경춘(瓊春) 등이었다.
1850년에는 〈호동서락기 湖東西洛記〉를 탈고하고 1851년(철종 2)에 《죽서시집》 발문을 썼다.
일찍부터 충청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 일대, 즉 호동서락(湖東西洛) 등의 명승지를 주유 관람하고, 또내·외금강산과 단양일대를 두루 편력하면서 시문을 써서 시 〈호락홍조 湖洛鴻爪〉 등이 수록된 시집 《호동서락기》를 남겼다.
2. 매창(梅窓)
1573(선조 6)∼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명은 향금(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다.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이라 불렀다 하며, 계랑(癸娘·桂娘)이라고도 하였다.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서,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다.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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