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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기초론의 대두와 전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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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기초론의 대두와 전개
1. 수학기초론의 대두 배경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은 가장 확실하고 학문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기하학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비단 수학에서만 아니라 학문전반에 지적인 충격이 컸다. 수학자들은 수학의 기초를 기하학에 두기가 불안했다. 그래서 산술에 수학의 기초를 두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한집합이 도입되었고 집합론은 모든 수학을 통일적 관점에서 분석하리라고 기대되었었다.
그것은 집합론이 가진 일반성과 포괄성 때문이었는데 Fraenkel은 집합론의 발견을 천문학의 Copernicus의 지동설과 물리학에서의 상대성이론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일련의 역설들 - Burali Forti의 역설(1897), Cantor역설(1899), Russell의 역설(1903)등 - 이 발생하면서 집합론은 물론 수학전체의 기초가 흔들리게 되었다.
2. 수학의 기초에 대한 학파 대립
이러한 상황에서 흔들리는 기초를 확실한 토대 위에 세움으로써 수학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나타난 학파가 Frege와 Russell로 대표되는 논리주의와 Brouwer의 직관주의 그리고 Hilbert의 형식주의이다. 이 세 학파는 또 약간의 입장 차이로 세분되기도 하지만 20세기 전반을 주도했던 수학에 대한 서로 상이한 입장을 대변했다.
논리주의는 흔들리는 수학을 논리학의 기초 위에 세우려했다. 그러나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그들의 시도는 논리학의 발전은 가져왔는지 모르나 목표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Russell이 채용한 공리 속에 논리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직관주의는 논리주의에 반대하였으며 수학의 근거와 본질은 직관에 있다고 주장한다. 수학적 대상은 자연수로부터 유한단계 내에 구성되는 것만 의미가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배중률의 무제한적 적용에 반대했다. 논리주의가 역설의 해결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면 직관주의는 역설의 포기를 통해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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