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한일간의 마찰을 불러 일으킨 일본지도자들의 망언은 총 26건에 이른다. 이들 망언은 기본적으로 ‘아시아해방관’내지 ‘대동아전쟁 긍정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주장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일제의 조선진출 긍정론 한국병합 합법론, 식민통치 긍정평가론으로 이어진다. 한편 이러한 망언은 1980년대 이래 증가의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1993년 자민당 붕괴와 이에 이은 연립정권의 등장으로 증대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망언이 표명되는 배경과 그 정치적 맥락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용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2. ‘망언’의 역사인식 : 전후사적 배경
기본적으로 망언은 개인의 우발적인 실언이라기 보다는 뿌리깊은 일본인의 역사인식의 표출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일본인의 제국주의적 역사인식이 어떠한 조건하에서 전후에 있어서도 온존, 유지될 수 있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동경재판의 한계
동경재판에서 기소의 중심적인 대상이 된 것은 구미 연합국에 대한 전쟁행위와 관련된 범죄였다. 동경재판에서는 25명의 군인과 정치가가 A급 전범으로서 사형 등의 처벌을 받았는데 이들 전범의 주된 罪狀은 대미 개전이었다. 물론 1931년 만주사변 이래의 대륙침략도단죄의 범위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중국침약에 적극적이었던 정치가라도 대미개전에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기소에서 제외되었다. 동경재판에서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추궁이 완전히 배재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인식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