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조가 한양에 위치를 잡은 것도 풍수지리적 이론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일시 계룡산을 선택했다가 중지된 사실이나 다시 모악남지가 천거된 것도 전부가 풍수적 안목에서였다.
한양은 태조가 풍수의 대가 무학대사의 추천에 따라 국도로 구축한 것으로 풍수적조건을 완비한 풍수적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한양은 태조가 천도하기 훨씬 이전의 고려조때부터 남경이라 하여 중히 여긴 곳으로 고려 중엽에 윤관을 시켜서 백악산남쪽에 오얏(李)나무를 심고 무성해지면 잘라서 왕성한 기를 눌러 압승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는데 드디어 이태조가 천도한 곳이기 때문에 철저한 풍수적 도시라 할 수 있다.
한양은 삼각산을 진산으로 하고 현무로서 백악이 해당된다, 우청룡으로 낙산줄기, 우백호로 인왕산, 주작안산으로 남산이 있다.
우이동에서 분기되어 수유현을 거쳐 장위동과 홍릉으로 이어져 곡흥동에 이르는 줄기는 외청룡이고, 도성에서 서북쪽 5리지점의 모래내(사현)와 녹번현에서 모악에 이르는 줄기 그리고 구파발에서 분기되어 수색, 성산동에 이어진 봉산향현 줄기는 외백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