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임노동 관계의 출현,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공장제
적 산업생산이 '신체 건강한자'와 '장애인' 사이의 사회적 구분을 크게 확대(혹은 창출)하였다고 장애에 관한 사적 유물론자나 마르크스주의 저술가들(Bames 1991; Finkelstein 1980; Oliver 1990; Gleeson 1999; Imrie 1996b)은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산 규범 및 엄격한 제약과 아울러 공장 규율의 집행은 정
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은 사람들을 점차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면서 경제적
영역에서 사회적 ․ 공간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한계화는 장애인을
사회적 ․ 교육적 를제'로서 보게 하였으며, 그 해결책은 일반적으로 그들을 기존사회로
부터 다양한 기관으로 격리시키는 것이었다(Oliver, 1990).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으로
속도가 느리고 대다수 장애인의 참여를 막거나 사회적 격리를 초래할 가능성이 적었던
전자본주의 사회의 보다 자결적이며 유연한 작업방식과는 뚜렷이 대비된다(Ryan and
Thomas 1980).
느리게 변하는 산재된 농촌공동체에서 성장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특별한 지원 없이도 그 사회의 노동과 생활에 비교적 손쉽게 흡수되었다. 거의 공식적인 학습 없이 관찰을 통해 모든 미성년자가 배우는 농사일을 혼자 행하는 동안 청각장애는 고용 능력을 그리 심하게 제약하지 않았다.
시각장애는 혼잡하지 않고 친숙한 농촌 환경 속에서 덜한 재난이었으며, 촉각을 통한 반복적인 기술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작업들은 특별한 (직업)훈련 없이도 많은 시각장애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