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한 정치세력들의 반응과 찬반탁 논리
1. 신탁통치와 국내 정치세력의 반응
한국 현대사의 큰 굴곡은 신탁통치를 둘러싼 국내 여러 정치세력들의 찬반논리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 협정의 내용이 국내에 발표되자 전 민족적 차원에서 반탁운동이 좌 우익구별 없이 전개될 기미를 보였다. 그리하여 신탁통치에 대해 남한의 임정, 좌익세력은 물론 박헌영, 허헌의 좌익세력 그리고 여운형, 백남준, 이영 등의 건준세력도 반탁운동에 그 뜻을 같이하고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각자의 논리와 입장에 따라 찬,반운동을 각각 전개하게 된다. 이리하여 국내 정치 상황은 엄청난 혼란과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게 되고 통일보다는 분단고착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게 되었다. 그러면 신탁통치안을 둘러싸고 국내 정치세력들은 어떻게 해방정국에 구체화 시키려고 했는지 알아보자.
신탁통치안에 대해 가장 빨리 또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세력은 김구가 지도했던 임시정부 세력이었다. 김구는 1945년 12월 28일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하여 미영,중, 소 4개국 원수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반탁결의문을 채택했다
1. 민족자결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국민족의 충의에 절대로 위반된다.
2. 제 2차 대전중 누차 선언한 귀국의 조약에 위반된다.
3. 연합국 헌장에 규정한 3종 탁치 적용조례의 어느 항도 한국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4. 한국에 탁치를 실시함은 원동의 안전과 평화를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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