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는 박정희정권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한 철권 통치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시민사회 속에서는 정치적 저항이 꾸준히 성장하였다. 정치적 저항은 여전히 학생들이 중심적이었으며, 종교인 ,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재야 세력이 함께 가세하여 억압적인 박정희 정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박 정권 하에서 계속해서 숨을 죽이고 있던 노동계급도 직접적인 정치적 도전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계속된 노동분규로 결과적으로 지배자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학생․ 재야의 정치적 도전이 노동 계급의 경제적 도전과 연계를 맺어 일종의 도전연합을 형성하였다. 야당 역시 유신 말기에는 한동안의 순응을 벗어나 집권세력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도전의 원천이 연합하여 박정희의 피살을 불러온 정치적 위기를 창출 하였다.
먼저 노동운동쪽을 살펴보면, 중화학 공업화의 일관된 경제 목표를 추구한 박 정권은 이를 위해 노동 계급에 대한 엄격한 통제체제를 확립하였다.
특히 유신 시기에는 국가의 노동 통제에 유교적인 문화 전통이 적극 활용되었다는 점이었다. 노사간의 화합이 강조되어 노동 조합 대신 공장 새마을 운동과 노사 협의제가 적극 강조되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장 내에서의 가족주주의적인 인화단결이 강조되었다. 이를 통해 순응주의적인 이념 주입의 노력이 경주되었고 위계적․비갈등적․화합적인 사회관이 강조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신체제하에서의 노동 통제는 입법과 제도를 통한 통제 이외에 문화적 요인과 안보 위기 의식을 적극 활용한 복합적인 통제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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