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으로 민권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따라서 당연히 활발한 통일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4․19 이후의 각 당들은 가지각색의 통일 방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서의 특징은 이승만 정부 시절의 무력 북진 통일론은 자취를 감추고 보수, 혁신세력을 막론하고 모든 정당이 평화 통일을 주장하게 되었다. 특히 혁신계에서는 남북교류설을 주장하면서 중립화 통일 정책까지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고 자유당 정부 시절보다 통일 정책의 발전이 훨씬 뛰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시민 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정부이므로 제 1 공화국처럼 권위적이라기 보다 개방적인 정책을 폈으리라는 점도 쉽게 알 수 있다.
2. 통일 정책
제 1 공화국 시대에 통일 논의는 금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시민 혁명을 통한 제 2 공화국 정부는 토론의 자유를 허락하였고 따라서 다양한 통일 논의가 나왔다. 특히 7․29 총선 때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60년 5월 3일 정부 수반 허정(許政)은 그의 취임과 더불어 ‘국제 정책에 대한 근본 방침을 천명하는 성명’에서
“현 정부는 과거보다도 일층 더 견실하고도 확실하게 반공산당주의 정책을 전진시켜 나갈 것이다. 허장성세하는 반공의 물질적․정신적 낭비를 없애고 이것을 유효하고 구체적인 대공방위 태세를 확립하는 데 돌려야 할 것이다.”
고 밝혀 무력 통일론의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였고 제 2 공화국 시기에는 소수의 인사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인사가 이 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통일의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나왔다.
4․19 이후 한국에서의 통일 논의는 혁신계 인사들의 공세와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론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속에서 평화 통일의 첫 공세를 취한 당은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이었다. 1960년 6월 17일 ‘사회대중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자 전국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방안이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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