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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의 윤리이론과 문제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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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의
윤리이론과 문제에 관한 고찰
들어가기에 앞서
아테네를 주축으로 한 도시국가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한 쇠망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이룩된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은 분명 긍지 높은 자유시민의 철학을 이야기했던 고대희랍철학과는 다른 입장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으며, 이에 이어서 정복전쟁을 등에 업고 등장한 대제국 ‘로마’대의 철학 역시 이런 입장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헬레니즘-알렉산더 대제의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한-이라는 거대한 물결과 로마제국의 정복과 예속의 시대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에게 당시의 철학은 전체의 힘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염세관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런 염세관을 반영한 당시의 대표적인 학파는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와 스토아학파(Stoicism)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이 편안한 도피처에서 고난과 패배의식을 쾌락1)으로써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면, 스토아 학자들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역설하는 동시에 전체의 의견에 굴복할 수 없는 개인의 현실을 드러내는 철학이었다. 특히 스토아 철학은 헬레니즘 시대가 낳은 철학사조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이론 중 하나였다고 할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어 도래한 로마시대에는 원로원 의원이자, 네로(Nero) 황제의 조언자였던 세네카(Seneca,4~6B.C), 로마 5현제시대의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121~180A.D)까지 스토아학파의 조류로 포섭하며 학문적 영향력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힘은 중세 기독교시대에도 빛을 잃지 않았으며, 르네상스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면면히 드러난다. 또한 그들의 교훈적 내용들은 근세의 철학자들, 스피노자(Spinoza)와 칸트(Kant)에게서도 계승되고 있다.
스토아학파의 형성과 견유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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