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이 말 뜻은 아무래도 어떠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뜻으로 해석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명‘강재구 사건’은 우리에게 대단한 사람임을 자아내게 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철학자의 입장은 분분한게 사실이다. 여기서 알아 볼 것은 칸트의 ‘동기주의’와 밀의 ‘공리주의’를 비교해 나갈 것이다.
강재구 소령의 용감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될 만해서 그의 동상은 여기저기 세워졌고, 어린이들은 그 어른을 존경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월남파병 같은 문제에는 찬반 논란이 일지만, 강재구 소령의 거사에 반발을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행위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그 행동을 정당화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전자는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관습에 의해 말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철학의 고유한 영역으로 객관적 사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 되어야만 한다. 사실 종교란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것이지만, 철학이란 그 의미와 합리성을 찾고자 한다.
다른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독배 이야기이다. 그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융성했고, 문화적으로도 서구 문명에 새로운 틀을 마련할 정도로 중요한 도시인 아테네와 페리클레스에서 활약했던 철학자였다. 일반 철학자들은 양립론에 빠져 있을 때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상적 풍토에서 일어선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는 아테네는 쓸모없는 논쟁을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이렇게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