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근대 건축가들의 등장
- 개항기의 혼란한 국내 정세와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였고, 이로써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후 일제는 강압적으로 한국병합에 성공하였고,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시기를 맞게 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과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국가로 성장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사회 각 방면에 걸친 전근대적 개편되면서 교육제도 또한 획기적으로 개편되었다. 근대적 교육제도는 근대건축방법을 이 땅에 유입,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에 의해 근대적 건축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건축문화를 소개하고 보급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반면에 전통적 건축방법은 교육에서 배제됨으로써 전통을 계승 발전시킬수 있는 지적 기반은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1916년 경성고업전문학교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건축교육이 이루어졌다.
한국인 건축가가 독립적인 설계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 이후이다.
김유방은 소위 ‘문화생활’에 적합한 2개의 주택모델을 개벽지에 발표.
-그의 설계안은 현관과 중복도를 갖춘 집중형 평면구성으로서 일본식 도시주택의 평면과 유사하다. 입식생활을 위한 공간구성으로서 대청을 없애고 거실의 독립성을 추구하였으며, 그 외관은 서양식 방갈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평면이나 외관에 있어서도 서양식 주택에 가까운 형식이며, 도시의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의 모델이었다.
김윤기의 건강주택안은 거주자의 합리적인 생활양식, 위생성, 경제성 등을 목표로 제안.
-이 또한 근대 일본의 도시주택 유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시 현관과 중복도가 도입되었고, 구조는 목구조로서의 외벽은 스터코로 처리되었다. 침실에 다다미만 설치한다면 근대 일본식 도시주택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평면과 구조를 채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