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부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미군정 시기로 민생안정을 목표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자본축적은 식량과 원료를 제공하고 구매력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농지개혁으로 시도되었으나 실제로는 지주의 87%가 한국인이고 나머지 13%만이 일본인 소유였던 재산이었기 때문에 이 13%에 해당하는 지주의 땅만이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형태로 분배되었다. 따라서 농지개혁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고 농지가격이 1년생산량의 3배였던 것에 비해 소작료는 1년생산량의 20%밖에 되지 않아서 농지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다.
또한 자본축적은 몇몇 기업체에게 특혜적, 독점적으로 제공되는데 즉 무상으로 유한계급에게 분할되었다.
현대는 현대토건과 자동차 공장부지를 부여받고 삼성은 양조장과 흥업은행, 선경은 직물, 한화는 화약사업, 쌍용은 동경방직, 두산은 맥주사업을 부여받게 된다. 무역은 해방 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종래 일본의 침략전쟁의 수단으로 추진되었던 역내통제무역은 해방과 동시에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째, 해방이 됨에 따라 역내무역이 전부 단절되었으며 제 3국과의 무역도 불가능하였다. 이것은 무역 면에 있어서의 단절성이며 원조도입의 필연성인 것이다. 둘째, 국내경제가 급격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외관계가 정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국내경제가 원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원조를 제외한 무역은 국내경제의 대외적 요인으로서 그 의의를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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