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사회는 지주에 의한 토지와 자연자원의 독점을 경제적인 기초로 한 사회로 봉건귀족과 농노의 대립을 계급대립의 기초로 하는 사회였다. 봉건제는 고대 노예제가 무너진 후 새롭게 성립된 생산양식이었다. 봉건제 생산양식은 이미 노예제 사회 내부에서 콜로나투스라는 형태로 싹트고 있었다. 콜로나투스 속에서 토지를 경작했던 농노들은 노예와 자유인의 중간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생산물의 대부분을 영주에게 바쳐야 했으며, 강제부역등의 의무조항을 갖고 있었지만, 소작료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자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개발, 도구개선 등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생산력의 발전을 보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이 노예제 사회가 진행되면서 봉건제 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봉건제 사회의 농노는 땅에 묶여 이동의 자유도 없었으며 지주의 땅에 부역을 바치고, 나머지 시간에 보잘 것 없는 자기 땅을 경작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였다. 봉건사회는 지역간 나라간 교역도 작아 폐쇄적이며 발전 속도가 더딘 농업사회였다. 이러한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 봉건영주들은 엄격한 신분제, 신분제를 합리화하는 종교적 교리, 토지약탈을 위한 영주들 간의 무력전쟁과 농민동원 등에 의존하였다.
2.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봉건제 사회속에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맹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발전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 중에서 자신이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타인의 노동생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지역 안, 지역간의 교환이 활발해진 결과 교환에 사용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매개물로서 화폐가 널리 사용되고, 상업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도시가 형성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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