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인터내셔널이 1876년에 아메리카에서 불명예스럽게 생명을 다한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창설할 것을 제의하는 데 별다른 열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인터내셔널이 창설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우선 主義상으로 일관성있고 굳건하게 조직된 政黨들이 유럽의 중요한 나라들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믿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게드와 하인드만이 주도한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1870년대 후기와 1880년대에 특별한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기 시작한 외형상의 마르크스주의적 組織들과 SPD마저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지도자들과 社會主義행동주의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국제적 조직의 필요성과 증대된 그들 계층에게 국제적 지도력이 요구된다는 인식이 점증했다. 마르크스가 타계한 1880년대 말에 이르러 창립총회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끈질기게 제시되었다. 게드주의자들과 브루스주의자들은 이 문제에서도 특별히 심한 차이점을 노정했다. 그러나 제 2 인터네내셔널의 여타 잠재적 회원들 사이에서도 폭 넓은 異見이 존재했다. SPD의 지도자들과 英國에서 조직된 [노동조합 總協議會](TUC) 사이의 異見이 가장 현저했는데 전자는 정치적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후자는 노동조합 조직을 강조했다. 단결을 도모해야 할 어떤 국제적 노동자 조직도 낡은 분파주의에 의해 무력하게 될 것 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