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은(1887~1958)은 전통적 유가에서 태어나 가학으로 공부하고 1902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가, 1904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1912년까지 8년 동안 東京府立第一中學校, 正則英語學校, 明治大學 法科를 마쳤다. 1917년에는 상해에서 申圭植과 함께 조선사회당을 창당하고 「大同團結宣言」을 국내외에 반포하여 임시정부수립을 기도한 바 있었다. 1919년에는 3․1 운동과 더불어 만주 길림에서 「大韓獨立宣言」을 기초하였고, 상해로 옮겨 임시정부 수립에 참획하여 임시헌장을 기초한 후, 그 해부터 2년 동안 조선사회당을 대표하여 프랑스․스위스․네덜란드․영국․독일․발트 해 3국․소련 등을 비롯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에 상해로 돌아와 1935년까지 임시정부의 각료나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 임시정부와 결별하였다가 1940년에 복귀하였는데, 그 동안에는 한국독립당을 이끌어 나갔다. 그와 같이 조소앙은 유럽 활동의 2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중국 대륙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운동가이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한국독립당 당강으로서 삼균주의를 제창하였다.
조소앙은 1917년부터 1950년까지 변함없이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하고 고집한 사상가요 외길 정치인이었다. 그러한 조소앙의 사회주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과연 어떤 성격의 사상이었던가 또 그러한 사회주의를 중국 관내 독립운동단체 가운데 우파 조직인 한국독립당이나 임시정부에서 어떻게 유지․발전시켜 왔던가 그리고 1948년에 소앙이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후,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사회당을 결성할 때 삼균주의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던가 그것이 이 글에서 규명해 보고자 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