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그의 3아들이 제국을 분할해 다스렸으나 그 가운데 2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353년에는 콘스탄티우스가 제국을 통합했다. 그의 치세에 로마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 대항했으나 페르시아를 격퇴시키지 못했다. 또한 황제의 사촌 율리아누스의 활약으로 갈리아는 방어했으나 도나우 지역을 평정하지는 못했다. 콘스탄티우스는 주로 종교문제에 관심을 두었는데 그의 간섭은 황제교황주의 (caesaro-papism)를 낳았다. 하지만 그는 아리우스파에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는 교회에 불리한 것이었다. 361년 그가 죽자 율리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 가문의 마지막 황제로서 뒤를 이었다. 이교(異敎)를 믿은 율리아누스는 이교신앙을 되살리고 그리스도교를 약화시키려 했으며, 자유로운 원수정을 복귀시키려고 애썼으나 페르시아를 공격하다가 패해 전사했다. 그의 뒤를 이은 요비아누스는 그리스도교도로서 페르시아와 화약을 맺고 종교에 대해 관용정책을 폈다. 그러나 364년 갑자기 죽었다.
새로 황제가 된 발렌티니아누스는 동생 발렌스를 공동황제로 지명해 제국을 서부와 동부로 분리했는데, 제국이 실제로 분리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서부를 맡은 발렌티니아누스는 이민족을 물리치고 여러 차례 반란을 진압하는 등 대외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고 하층계급 보호정책을 폈다. 그러나 국가의 필요 때문에 사회의 화석화 추세를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동부를 다스린 발렌스는 무능했고, 광신적인 아리우스파로서 이교도와 정통 그리스도교를 탄압해 반발을 샀으며, 도나우 지역으로 침입해온 서고트족과 동고트족과의 전투에서 378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