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문학관과 문예조직, 문학운동에 있어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조선공산당의 지령과 김태준의 중재에 의해 통합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들은 1945년 12월 13일, 조선문학건설본부의 확대기구였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회관에서 합동총회를 열어 양 단체로 분열된 것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통합된 단체의 명칭을 조선문학동맹(제1회 전국문학자대회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으로 명칭이 바뀜)으로 할 것과, 문학운동의 기본방향 실천을 위한 행동강령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 소탕, 봉건주의적 잔재 청산, 국수주의의 배격을 동일한 방침으로 설정하면서 양측의 편차를 해소하고자 했다. 통합성명서에 따르면, 양 단체는 서로 엄숙하고 성실한 자기비판을 통해 일시적인 타협이나 양보가 아닌 진실한 통합임을 강조하면서 상호 긴밀한 논의를 통해 의견일치를 이룬 통합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적 필요성에 의한 이같은 통합은 또다른 갈등의 내적 불씨를 안고 있었다. 당의 문화조직에 깊숙히 참여하면서, 1946년 1월 당에서 발표한 「조선 민족문화 건설의 기본 노선(잠정안)」을 작성하는 등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임화·김태준 등이 주체가 된 통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조선문학가동맹은 ‘민주주의 민속전선’에도 깊이 관여하는 등 당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제반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당의 공식적 입장표명인 「조선 민족 문화 건설의 기본노선」은 이후의 전반적인 문학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