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 분쟁
목차
1. 독도
2. 독도의 가치
2-1 어장으로서의 가치
2-2 지하자원적 가치
2-3 군사적 가치
2-4 전략적 가치
3. 독도 영유권 분쟁
3-1 일본의 주장과 한국의 반박
3-2 2000년대 이후 일본의 독도 분쟁화
4.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장
5. 나의 생각
6. 자료 출처
1. 독도
독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동도(東島)·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는 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에, 서도는 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에 위치한다. 동도·서도간 거리는 151m로 좁은 수도(水道)를 이룬다. 동도는 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이고, 서도는 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이다.
삼국사기에는 512년(신라 지증왕 13) 하술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471년 삼봉도(三峰島)와 1794년 가지도(可支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는데, 석도는 돌로 된 섬 이라는 뜻의 돌섬 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서는 돌 을 독 이라 하여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은 돌섬 을 독섬 이라 불렀으며, 독섬 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 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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