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만성적인 실업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1921년에는 실업보험이 국민보험으로부터 독립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세계불황에 따라 생긴 대량실업과 생산의 폭락으로 지금까지의 사회보험에 의거한 방법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어 자본주의 경제는 사상 최대 위기의 시련을 겪으면서 복지국가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국 국민은 국가자원의 총동원과 위험의 공동부담이라는 값비싼 경험에서 종래의 구빈제도나 시장을 통한 사회보험제도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시된 충선이 예상을 깨고 전쟁 영웅 처칠의 보수당이 패배하고 애틀리가 이끈 노동당이 승리하였다.
집권한 애틀리와 노동당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관한 위원회, 즉 베버리지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위원장은 실험보험 전문가 베버리지이고 위원은 정부 각 부처 소속 고위 관료들이다.
베버리지 위원회는 이미 폐지된 왕립노동자보상위원회의 업무를 일부 승계하고 또 부분적으로 전쟁 전에 엉성하게 끝난 건강보험 정비작업을 마무리하며 또 부분적으로 전쟁 직후부터 점차 거세진 가족수당 요구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베버리지 보고서에 기존의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다루고자 했고 또 전후 재건계획의 청사진도 만들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12년 11월 베버리지 보고서는 완성되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일부 각료들이 그 내용이 지나치게 혁명적이라 하여 반대를 했지만 영국의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베버리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원칙에서 출발했다.
첫째,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분파적 이해는 무시한다. 1911년의 국민보험법은 결코 쉽지 않은 타협의 산물임을 잘 기억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런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둘째, 국가재건을 위해서는 5대 악(five giants), 즉 결핍(want), 질병(disease),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나태(idleness)를 극복해야 한다. 그의 계획은 이 중 우선 결핍에 초점을 맞추고 소득보장을 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셋째, 사회보장은 국가와 개인의 협력을 통해 달성된다. 국가는 단지 국민최저(a national minimum)만을 보장하고 그 이상은 개인과 가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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