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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회복지법] 중세시대의 빈곤문제와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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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회복지법] 중세시대의 빈곤문제와 사회복지
중세시대의 빈곤문제는 제도적 차원의 사회복지보다는 자선에 의한 빈곤구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봉건시대의 장원제도에서는 대부분의 빈곤층이 농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었으며, 이들의 복지는 영주에 의해 이루어졌다. 영주는 농노들의 복지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당시의 생산성이 그다지 높았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경작에 의한 이윤은 영주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소비를 충족하기에도 풍족하지 않았으며, 50%에 가까운 농노들은 빈곤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빈곤층에 대한 중요한 보호원칙은 존재하였으며, 이 원칙이 소위 "교회법"이다. 교회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해당되는 수준을 초과하는 정도의 소득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만일 그 이상의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산을 늘리기 위해 소득을 지키는 것은 절도에 해당된다."고 되어 있다. 즉 빈곤층에 대한 자선이 곧 종교적 구원의 지름길이며, 자선을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있음에도 자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절도와 같은 것으로 비난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영주 이상의 귀족계층에 의해 자선이 이루어졌고, 특히 교회에 대한 기부행위가 활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빈곤층을 위한 자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종교적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적인 자선활동을 하는 것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으며, 종교단체 특히 교회가 자선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교회 역시 집 없는 사람들에 대해 숙식을 제공하고, 빈곤층에 대해 음식을 제공하는 정도였으며, 빈곤의 근본적 예방이나 구제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13세기부터는 소위 산업화의 초기로서 봉건시대의 장원제도가 붕괴되어가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양모산업은 국제무역을 활성화시키면서, 점차 영국의 경제를 화폐경제로 전환시켰다. 장원제도가 붕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임금을 받는 농업노동자가 되거나, 도시로 옮겨가 산업노동자가 되었다.
농노의 위치에서 자유인이 된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방랑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양모산업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지역주민들이 우선적으로 취업됨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은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였다. 봉건시대에는 영주에 의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나, 자유인이 된 후로는 자신의 생계는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질병에 걸리거나, 노쇠해진 경우에는 구걸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일자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프랑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 역시 농노로 돌아가느니, 타향에 가서 자유인이 되기를 희망하게 됨에 따라 방랑자들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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