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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영국의 사회복지정책과 복지국가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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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영국의 사회복지정책과 복지국가의 개혁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영국의 사회복지정책은 큰 흐름의 변화 없이 꾸준히 성장해 왔다. 주요 사회보험들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급여수준이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위험의 정도도 급격히 향상되었다. 그 결과로 사회복지재정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1964년까지 사회복지정책에 큰 변화가 없었으며, 40년대 만들어진 사회복지정책의 안정화를 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점차 통합사회보험에 대해 중산층 이상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이라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페이비안 소사이어티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빈곤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정책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확충되기를 주장하였다. 1966년부터 이들의 주장과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면서 결국 이들의 주장은 가족수당의 확대, 저소득층에 대한 임금보충, 최저임금제도 등을 중심으로 정부에 의해 법제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영국의 복지국가의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964년부터 1979년까지는 정권이 수시로 바뀌면서 사회복지정책이 안정감을 잃게 되는 시기이다. 노동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합리적 정책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복지를 다루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지 사회복지재정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정책을 축소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례를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70년대의 석유파동은 실업률을 급상승시키면서 사회복지의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79년 IMF의 통치를 겪은 영국은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처 정부라고해서 단기간에 사회복지정책을 축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미 국민들은 사회복지의 혜택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이에 따라 대처 정부는 영국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많은 연구프로젝트를 발주하여, 보고서나 저서의 형태로 시중에 보급되게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복지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는 한편 일부의 선택적 사회구성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저항이 약한 사회복지프로그램들을 폐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사회복지프로그램은 손을 댈 수가 없었으며, 대처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정책은 실업률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면서 사회복지재정의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보건정책의 효율화를 위해 각 국립병원과 보건소에서 채용한 전문경영자들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엄청난 인건비만 소요되도록 하였다.
현재의 블레어 정부는 노동당 정부이면서도 여러 부분에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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