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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파와 소수파 보고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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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파와 소수파 보고서 시기
영국자본주의의 번성과 자유방임의 원리는 1873년의 대공황과 함께 새로운 조류와 국면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회개량주의' (social reformism)라는 시대적 사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당시의 사상을 바탕으로 빈곤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미숙련 노동자들의 조직화로서 새로운 사회집단(social group)의 등장이다. 이에 1880년에는 노동자 세력이 강화되었으며, 1885년에는 노동자 투표권의 확보에 이어 정치권에 개입하게 되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노동당(Labor Pa)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발언권을 지니게 되면서 자연히 빈곤층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구빈법의 재고를 요청하게 되었다.
․ 온정주의적인도주의(paternalistic humanitarianism)의 확산이다. 웹(Webb)은 주로 부유한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빈곤에 대해서 죄의식(consciousness of sin)을 표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들은 점차 증대되는 풍요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빈곤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에 참여한 단체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C.O.S.운동', 바넷(S. Barnett)에 의해 주도된 '인보관운동'(Settlement House Movement)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을 주장한 '페이비언협회' (Fabian Society)의 활동 등이 있다.
당시 페이비언협회 활동을 제외한 모든 활동은 대부분 도덕적 요인을 강조하였으며, 기존의 경제적, 정치적 체제의 변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하였다.
․ 빈곤에 대한 실증적 연구(positive research)이다. 부스(C. Booth)와 라운트리(B. Rowntree)는 1880년대 런던과 요크(York) 시의 빈민생활에 대한 실태를 극적으로 밝혀내었다. 부스는 런던시민의 약 1/3이 빈곤상태에 있음을 조사하고, 이들은 신체적 효율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피복이 부족한 상태에 있음을 통계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빈곤의 원인이 도덕적 결함보다는 실업과 노령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라운트리(Rowntree)는 부스의 조사방법을 더욱 세련화시켜 요크 시 빈민의 생활조건을 실증화 하였다.
예컨대, 지역주민 중 약 28%는 저 임금의 상태에 있었고, 약 10%는 신체적 효율성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으며, 약 18%는 2차적 빈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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