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류 시인하면 대표적 인물로 황진이와 허난설헌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황진이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주인공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많이 받아왔다. 또한 그녀의 시조 작품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등에 많이 소개되어 익숙하기도 하다.
반면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로 천재 시인이라는 정도 외에는 그녀의 삶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드물고, 그녀의 작품 또한 사람들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단지 그녀가 죽기 전에 썼다는 한시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정도가 일부 사람들에게 읽히는 정도이다.
두 사람 모두 16세기 인물이지만, 기생과 명문가의 따님이라는 신분 차이만큼이나 그들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다. 서녀 출신의 기생인 황진이는 주로 한글로 작품을 썼지만, 허난설헌은 당대 명문가 태생임을 반영하듯 한문으로 시를 썼다. 이 점이 허난설헌보다는 황진이가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차이점은 동시대의 인물임에도 황진이는 신분과 여자라는 한계를 넘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았던 반면, 허난설헌은 주어진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만 시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극적으로 살다가 스물일곱의 짧은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속설이 허난설헌에도 적용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