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조선의 교역과 은
[목차]
Ⅰ. 서론
Ⅱ. 조선과 청나라의 교류
1. 조공책봉과 조공사행제도
2. 사절단이 휴대한 은의 용도와 출처
3. 조선과 청나라의 구체적 교역양상
Ⅲ. 조선과 일본과의 교류
1. 조선의 상황
2. 조선과 일본의 구체적 교역양상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Ⅰ. 서론
지난 세기 후반까지 아시아의 ‘근대’는 일반적으로 ‘서양의 충격(Western impact)’과 그에 대한 ‘아시아의 대응(Asian response) 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어 왔다. 즉, 유럽은 16세기 신항로의 개척 이래 세계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유럽의 자본주의와 근대 문명이 세계로 확산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을 따를 경우 중국의 경우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비로소 정체되었던 전근대의 상황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그 후 유럽 자본주의의 영향 하에서 공업화 혹은 산업화로 불리는 근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근대화의 패턴은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 발전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1)1) 홍성구, 2008, 「조공무역체제론의 재검토」, 『근대 중국 대외무역을 통해 본 동아시아』, 동북아역사재단. p.15
고전적 화폐사가들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은데 ‘아메리카의 귀금속 생산-유럽으로의 유입-아시아로의 유출’, 이것이 이들이 그려놓은 큰 그림이다. 이 고전적인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강한 유럽과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럽은 현지에서는 수요가 아주 약한 먼 이국에서 광산 개발을 주도하여 나머지 지역으로 송출했으며, 무엇보다도 아시아 시장을 개방하는 데에 이 자원을 사용했고, 또 이 과정을 주도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간 것이 된다.2)2) 주경철, 2008,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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